서브 컨텐츠 박스
솔거이야기
솔거의 국적과 신분
- “‘솔거’는 기실 순수한 우리말 이름의 차자借字로서 버젓한 신라 사람의 이름이다.
아마 그 원어原語는 ‘우뚝 솟음’과 ‘날쌤’의 뜻으로 ‘솔ㅣ(솔개의 옛말)’ 혹은 ‘솔그리’였을 것이다. 후자라면 그의 명화 노송도에서 유래한, ‘솔을 그린 이’의 뜻이며, 당시 그의 별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양주동 ,『한국의 인간상』5,신구문화사,1966)
- 언어학적으로 설명한 양주동의 풀이가 역사적인 근거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는 것인지 확단할 수는 없지만 신라의 역사적 자취를 토대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 이밖에 ‘솔거’라는 이름의 뜻에는 ‘솔거노비率居奴婢’, 즉 ‘주인과 같이 살거나 주인집 근처에 거주하면서 직접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비’를 지칭하는 조선왕조 시대의 용어와도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나와 있어 관심을 끈다.
(솔거 : 그의 신분, 활동연대, 화풍, 안휘준 김선주교수의 의견)
- 어쨌든 이러한 견해들은 솔거가 틀림없는 신라 사람이며 미천한 신분 출신의 인물이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백률사중수기』에서는 솔거를 승려로 보고 있으나 『삼국사기』와 『동사유고』에서는 직접적으로 솔거의 신분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아 솔거의 출신과 환경적인 내용만으로 많은 학자들은 솔거를 승려보다는 세속인으로 보고 있는 추세이다.
솔거의 활동연대
- 솔거의 활동연대는 노송도의 제작연대와 결부되어 있다. 하지만 솔거의 활동연대를 구체적으로 증명할 자료가 미비하여 학자들 속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나 『삼국사기』 「열전」 끝 부분에 기록된 경주 분황사의 관음보살상과 진주 단속사의 유마상도를 그린 내용으로 보아 진주 단속사를 창건한 경덕왕시기인 통일신라시대로 보고 있다.
솔거의 화풍과 노송도
- 솔거의 화풍역시 그의 유작이 남아있지 않은 한계로 고서에 언급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추정할 수밖에 없다.
- 『삼국사기』 「열전」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솔거는 산수화와 불교회화에 능한 화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작품인 황룡사의 「노송도」는 세속적인 산수화를 보여주는 근거로서 그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고 일부 학자들을 통해서는 색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뿐 만아니라 분황사 「관음보살상」과 진주 단속사의 「유마상」을 근거로 불교인물화의 대가였던 부분도 알 수 있다.
- 실제로 노송도가 황룡사의 어느 금당 벽에 그려진지도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삼국사기』에 언급될 정도의 화상이라면 황룡사의 3금당 중 중요한 금당인 중금당의 동쪽외벽이지 않을까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