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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소개
경주솔거미술관
- 경주솔거미술관은 2008년 한국화의 거장 소산 박대성 화백이 작품 기증 의사를 밝히면서 건립이 추진된 이래, 2012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공원 내 아평지 연못가에 한 곳에서 첫 삽을 뜨게 되었습니다.
신라시대 화가 솔거(率居)의 이름을 따 ‘경주솔거미술관’으로 2015년 8월,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천년고도 경주에 자리한 경주 솔거미술관은 경상북도와 경주시가 지원한 최초의 공립미술관입니다.
- 빈자(貧者)의 미학을 실천하는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하고 재단법인문화엑스포가 건립을 주도하여 미술관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도록 세웠습니다.
소산 박대성 화백과 경주미술협회, 재단법인 문화엑스포가 함께 손잡고 세운 미술관으로서 신라 예술의 전통을 기반으로 하여 오늘의 미술로 거듭날 요람이 될 것입니다.
승효상과 건축
- 승효상 작가는 ‘빈자의 미학’을 자신의 건축 철학으로 삼아 활동하는 대표 건축가입니다.
- 수졸당(1993), 수백당(1998), 웰콤시티(2000) 등 다수의 건축상을 수상하였고, 故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2011) 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경주 솔거미술관은 2013년도에 설계한 그의 작품으로 미술작품과 건축물의 조화를 배려한 설계가 일품이라 할 수 있으며 특히 제3전시실의 통 유리창은 자연을 한 폭의 작품으로 승화하여 미술관 건축의 백미로 꼽히고 있습니다.
소산(小山) 박대성
- 소산(小山) 박대성(1945-)은 수묵으로 독자적 예술세계를 이룩한 화가이다. 수묵은 동북 아시아 한자(漢字) 문화권의 전통적인 회화 도구이다. 지필묵(紙筆墨)으로 표현하는 세계, 거기엔 고도의 정신세계를 기초로 한다. 그림 그리는 일은 곧 수행하는 것과 같다. 인품이 곧 작품이기도 하다. 박대성은 평생 외롭고도 어려운 수행의 길을 걸으면서 독학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룩한 화가이다.
- 박대성의 불행은 조국 분단과 이데올로기라는 시대적 상처와 함께한다.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자신은 팔 한쪽을 잃었기 때문이다. 박대성은 살을 깎는 노력으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화가로서 명성을 얻은 중년 이후의 나이에도 그는 붓글씨 연습을 통한 필력 함양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물론 글씨와 그림은 한 몸이라는 동양의 미학은 중요한 경구였다. 서화일체의 실현은 오늘날 박대성 예술세계의 독창성과 직결된다.
- 1979년 박대성은 중앙일보사가 주최한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미술계의 별로 부상되었다. 수상작은 자연을 섬세하게 묘사한 새로운 감각의 신 산수화였다. 산수화에서 출발한 박대성의 회화는 점차 다양한 소재로 확대되면서 새로운 기법으로 이어졌다. 그가 즐겨 그린 제주도 풍경이라든가 낙동강 하구의 모습 혹은 농촌 풍경 등 다양했다. 소재의 확대는 실크로드 여행을 통하여 오지까지 연결되었다. 히말라야 설산이라든가 타클라마칸사막을 답사하면서 그의 ‘예술적 발언’은 깊고 넓어졌다.
- 1990년대 이래 박대성은 신라의 고도 경주 남산자락에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그 같은 결과의 하나로 그는 신라정신과 만나 경주의 문화유산과 풍광을 화면에 담고 있다.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는 박대성 예술과 만나면서 새롭게 재탄생되고 있다. 석굴암, 불국사, 남산 불적 등 신라의 대표적 문화유산은 예전과 다른 시각에서 박대성 예술의 모체로 부상되었기 때문이다.
- 박대성 예술의 특징은 신체적 결함을 딛고 독학으로 일군 개성적 세계라는 점,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현대화했다는 점, 동양정신 혹은 신라정신을 수묵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점, 오랜 세월동안 자기 수련을 통한 수묵의 위대한 승리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박대성은 동북 아시아 지역에서 낳은 흔치않은 오늘의 개성적인 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