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정보·역사적 기록, 진위 여부 보다 해석이 문제”<br /> 소비자 스스로 진실-거짓 판별을<br /> 황룡사 기둥 복원에도 ‘해석’ 남겨<br /> 문제 의식 회화·사진·입체로 소개<br /> 정보 만들어진 행위 자체만 진실<br /> 보도 사진·다큐도 많은 판단 개입<br /> 변질된 상태 걷어 내는 게 ‘예술’<br /> <br /> <img alt="다시-박인성 작 'film075'. 경주솔거미술관" src="https://www.idaegu.co.kr/news/photo/202306/2023061901000573500034431.jpg" /><br /> 박인성 작 ‘film075’<br /> <br />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정보민주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하지만, “범람하는 정보들에 얼마만큼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정보 생산자가 전문가 그룹에서 비전문가 그룹으로 확대되면서 정보의 질도 그에 비례해 떨어지고 있고, 무분별하게 생산되는 정보들에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정보 생산자들은 정보의 진위 여부보다 정보 생산 자체에 방점을 찍고 있고, “어떻게 하면 더 자극적인 정보를 생산해 클릭 수를 높여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을까?”가 오늘날 정보환경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임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이런 환경에서 생산자의 도덕적 해이가 진정성 있는 정보 생산에 대한 요구를 잠식하는 것은 특별한 현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br /> <br /> 박인성(朴寅成, 1985-) 작가의 미술은 우리 사회가 정보를 어떻게 다루는가와 맞물려 있다. 정보는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강력하고 핵심적인 개념이고, 작가는 현대인이 정보를 생산하는 방식에서 현대사회의 단면을 읽어내려는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편승하는 정보 생산자들의 자세에서 우리시대를 관통하는 보편 현상을 발견하고, 그것을 예술적인 방식으로 집약하고 있다.<br /> <br /> 그가 인식하는 현대인의 정보 생산 방식의 특징은 ‘빠름’과 ‘가벼움’으로 점철된다. 여기에는 디지털 기술이 보다 손쉽게 정보를 양산하도록 부추기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현상과 빠르고 가벼운 것을 선호하는 정보 소비자의 선호가 맞물려 있다. 박인성 작가의 문제의식은 ‘정보의 진위 여부에 대한 의문’으로 촉발된다.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진실성’이라는 정보의 질적 문제에서 오히려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현대사회가 정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그가 진단한 내용이다.<br /> <br /> 정보와 관련한 그의 입장은 “결국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것은 정보를 소비하는 개인의 몫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보가 제한적일 때는 정보 생산자가 진실성이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지만 지금은 너무나 가볍게 순간순간 정보를 생산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가벼운 정보들이 급증할수록 정보의 의미도 옅어지고, 진실이나 거짓도 소비자인 우리가 스스로 판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br /> <br /> <br />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오래된 달의 저편’이라는 주제로 펼쳐지고 있는 박인성 작가의 개인전에는 정보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을 회화와 사진, 입체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한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또 다른 형태의 정보인 ‘인류의 기록문화’라는 주제를 제시하며, 전시 공간이 위치한 천년고도 경주의 지역적 특성을 자신의 주제의식과 연결하고 있다. 과거 어느 시점에 중요했던 기록된 역사와 현대의 경주를 겹치며 “우리가 역사를 기록하는데 있어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고 공유해 왔는지”에 대해 고찰한다.<br /> <br /> 이번 전시작인 설치와 평면 작품 ‘박제된 순간들(Stuffed Moments)’ 시리즈는 황룡사에 사용된 기둥(주심포 양식)을 모티브로 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주심포 양식의 목조각 기둥에 작가의 2019년 작품과 2023년 작품을 변형해 조립한 작품이다. 작품은 2019년 작업한 아크릴 박스 속 사진을 끄집어내 그의 올해 사진 작품과 함께 새로운 투명 용기에 구겨 넣고 레진을 부어 굳힌 후 주심포 양식의 기둥 위에 설치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최근 황룡사 복원 움직임이 본격화되자 황룡사를 답사하고 황룡사에 사용된 기둥을 목조각으로 복원해 냈어요.”<br /> <br /> ‘박제된 순간들’ 연작에서 발견되는 개념은 ‘복원’이다. 천년 전 실존했던 황룡사의 기둥을 복원하고, 작가의 2019년 작품과 2023년 작품들을 복원하여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창작한 이 연작의 출발에 ‘복원’이 자리한다. 복원에는 과거의 사건이나 대상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하지만 현재와 과거 사이의 거리 사이에 블랙아웃(blackout)이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한 복원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시간의 흐름에 의해 모든 것은 희미해지거나 변질됐기 때문이다. 그가 복원한 천년 전의 황용사 기둥 또한 완전한 복원이라고 장담할 수 없고, 그의 과거 작업의 복원 또한 이미 미세한 변질이 진행된 상태이기 때문이다.<br /> <br /> 완전한 복원이 불가능할 때 중요하게 대두되는 개념이 생겨난다. 다름아닌 ‘해석’이다. 과거의 자료나 기억을 다양하게 취합하여 시간의 공백을 최대한 메워야 하는데, 이때 개입되는 것이 ‘해석’이다. ‘해석’이라는 개념 이면에 정보에 대한 불확실성이 자리한다. 그는 “현대사회는 정보의 총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정보의 사실 판단은 어려워지고 정보가 존재했었다는 현상만 사실로 존재한다”고 전제하고, “정보를 신뢰하던 과거와 달리 정보가 범람하는 현대사회에서 정보는 ‘해석’의 문제로 남는다”고 인식한다. 이런 현상을 지켜보며 그는 “정보의 내용보다 정보 덩어리 자체에서 진실을 발견”하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br /> <br /> 그에게 정보는 맹목적으로 신뢰할 수 없고, 이에 따라 해석의 영역으로 남겨진다. 그가 입체 작품을 투명하고 정육면체의 형태로 제작한 것도, 작가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여지를 줄여 줌으로써 해석의 여지를 넓혀주기 위한 방법론 중 하나다. 이는 우리가 정보를 생산하는 방식과 일맥상통한다. “이미 지나간 역사를 다시 재조명하는데 있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를 생각했을 때, 결국 약간 뭉개고 가는 것이라고 봤어요.” 뭉갠다는 것은 추측, 즉 해석의 영역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br /> <br /> 그의 작업을 언급할 때 짚고 넘어가야 하는 작업은 평면 작업인 ‘베일 뒤편에(Behind the Veil)’ 시리즈다. 사진을 작업의 근간으로 하는 그의 작업 특성을 오롯이 드러낸 작업이다. 작업의 출발은 온라인에서 발견한 이미지의 디지털 색상번호를 디지털 컬러차트에서 추출하여 색면(Color Field)으로 조정한 후에 아날로그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이다. 이후 현상한 필름을 스캐너 위에 올리고 산화(散華)를 위한 용액을 사용하거나 다른 필름을 겹치는 방식으로 우연적인 형상을 확보하고, 그것을 스캔해서 출력한다.<br /> <br /> “최종 출력물에는 애초에 선택했던 이미지들이 가지는 의미는 사라지고, 물성으로서의 화면만 남겨지게 됩니다. 의미의 자리에 물성이 대신하는 것이죠.”<br /> <br />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베일 뒤편에(Behind the Veil)’ 시리즈는 보다 진화된 버전이다. 기존의 작품에서 캔버스에 바로 인쇄하는 방법에서 탈피해 낱장의 얇은 종이에 자가 인쇄(Home Printing)한 후 콜라주(Collage) 형식으로 캔버스에 재조합하며 화면을 보다 풍요롭게 병치했다. 디지털 상에서 완전무결했던 이미지가 아날로그로 전환되어 콜라주 형식으로 재조합되는 과정에서 조작의 여지는 더욱 높아졌다. 필름 상단에 새겨진 ‘KODAK EKTAR 100’이라는 글자와 하단에 새겨진 날짜와 시간 등의 정보들마저 화면 속 일부로 끌어들이며 해석의 영역으로 치환한다. 이전 버전에서 글자나 날짜 등의 정보는 해석의 영역이 아닌 사실의 영역으로 기능하도록 했다.<br /> <br /> 그의 작업은 “21세기가 정보를 어떻게 생산하고 소비하는지?”를 탐구하는데 맞춰져 있다. 21세기의 정보의 특징은 생산과 동시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정보 생산과 정보 소비의 주기가 비약적으로 빨라졌다는 이야기다. 그가 “5초 내에 승부를 보는 숏폼(Short-Form) 형식의 사건에서 기승전결을 발견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기승전결이 사라진 정보에서 진실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런 정보들에서 발견하는 진실은 오직 그런 정보가 만들어졌다는 행위 자체에서만 가능해진다. “생산된 정보보다 기승전결이 분명한 저의 작업 행위에 의해 남겨진 물성이 오히려 더 진실하다고 봐요.”<br /> <br /> 그가 선호하는 대상은 사건 이미지다. 여기에는 사건을 정보 생산자에 의해 2차적 해석이 가해진 변질된 상태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사건을 다루는 보도 사진이나 다큐멘터리에는 다양한 이들의 의식적인 시선과 판단이 사실과 무관하게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록이라는 것이 이해관계자들의 산물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그의 이런 판단은 설득력을 얻는다.<br /> <br /> <br /> 그는 의식적인 예술 행위를 통해 변질된 상태를 걷어내려는 입장을 취한다. 이것은 다큐멘터리 속 내용보다 다큐멘터리를 작업한 행위나 그것이 진행됐던 시간에 초점을 맞춰 작업을 변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렇게 얻어진 결과에 드디어 그가 염원하는 ‘진실’이, 즉 행위와 시간성에서 바라본 진실이 담겨지게 된다.<br /> <br /> 이번 전시에선 다채로운 색채 작업들도 눈길을 끈다. 작품 ‘필름(film)’ 시리즈다. 미국 뉴저지 소재의 색상 전문 연구·개발 기업인 팬톤(Pantone LLC.)이 해마다 발표하는 ‘올해의 컬러’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이다. 그는 팬톤이 발표하는 올해의 컬러가 다분히 정치·경제의 산물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시아의 변방에서 올해의 색채를 발표했다면 팬톤처럼 세계적인 차원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권력이 권위를 획득하게 했다는 것.<br /> <br /> 그의 작업에서는 팬턴 칼라는 이미지를 겹치는 과정에서 산화 용액을 떨어트려 필름이 녹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칼라로 대체된다. 이는 팬톤의 권위나 권력의 몰락이자 색채의 순수성과 자율성이 회복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권력과 자본의 상징인 팬톤 칼라는 그의 작업 행위에 의해 허물어지고, 다큐멘터리 본질에 다가간다.<br /> <br /> “인간은 기록의 동물이지만 사실을 축적하려 하기보다 사실을 파헤치고 깨트리고 노이즈를 만드는 것이 더 본질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기록도 애매모호하게 하죠. 이때 해석이 필요한 것이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창발 해 왔죠.”<br /> <br /> 그가 정보를 진실의 문제에서 해석의 영역으로 인식한 것은 독일 뉘른베르크 조형예술대학에서 유학하던 시기였다. 독일 나치정권이 만든 정치선전영화 필름을 우연히 플리마켓(벼룩시장)에서 구입하면서 나치정권을 선전하기 위해 거짓으로 점철된 영화를 만들어놓고 사실을 전달하는 기록 영화로 탈바꿈 시켰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자신의 예술적 주제로 채택했다.<br /> <br /> 경주솔거미술관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청년작가를 발굴하고 창작 및 전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청년작가 기획전의 박인성 개인전은 경주솔거미술관 1, 2전시실에서 7월 23일까지.<br /> <br /> 출처 : <a href="https://www.idaegu.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4096">대구신문(https://www.idaegu.co.kr)</a><br /> https://www.idaegu.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4096<br /> 황인옥 기자(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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